불안을 심하게 느끼는 사람에게 '불안은 정상적인 감정이다.'라는 말은 참 낯설다. 범불안장애처럼 항상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은 그저 이 감정을 회피하고 싶어 한다. 또한 '이 불안함만 없어진다면 정말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이들이 느끼는 불안은 일종의 비정상적인 불안이라 할 수 있다.
적절한 불안은 우리가 위험에 처했을 때 정서적 각성을 높여 문제를 해결하고 미리 대처하는데 도움을 준다. 인류가 몇 만년을 생존해온 것도 이 불안이라는 감정이 잘 작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현대인들은 생명의 위협이라는 갑작스러운 상황이 아니더라도 스트레스를 겪게 된다. 특히 범불안장애를 겪는 경우 걱정이 지나치게 과도하고, 앞일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기대를 반복해 일상생활에 많은 불편을 겪는다. 초조해 안절부절못하고, 신체적으로 힘든 일을 하지 않아도 피곤함을 느끼며, 주의집중력이 떨어져 과업 수행 능력이 형편없어진다. 이번 글에서는 이러한 범불안장애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1. 특징
걱정의 종류가 광범위하다.
이들은 일상의 모든 사건 사고가 걱정과 불안으로 이어진다. 뉴스에서 교통사고 소식이 나오면 자신의 가족이 사고를 당하면 어쩌나 걱정하고, 친구 남편의 해고 소식을 들으면 자신의 가족들은 회사에 문제없이 잘 다니고 있는지 불안해한다. 또 자신이 좋은 자녀, 남편, 아내, 아빠인지를 걱정하기도 하고, 직장에 맡은 일이 원만하게 처리되지 않아 지금까지 쌓은 자신의 경력이 물거품이 되는 것은 아닌지 지나치게 우려하기도 한다.
이처럼 범불안장애는 어떤 특정한 사건이나 상황에서 발생한다기보다는 일상의 거의 모든 일들을 끊임없이 걱정하며 불안 상태에 있는 것을 말한다. 신체적인 질병이나 상해는 물론, 자신을 비롯한 누군가의 죽음, 심리적 상처나 장애, 자신에 통제에서 벗어는 것, 인생에서 겪게 되는 실패 사건, 불가피한 사건에 대한 대처 기능의 상실, 누군가의 비난을 비롯한 거절 등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만연화 되어 있다.
정상적인 걱정이나 불안이라면 문제가 해결된 후 긴장 상태도 사라져야 하는데, 범불안장애를 겪는 사람들은 걱정이 만연화 되어 있기 때문에 불안감이 가시지 않는다. 그 이유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들이 걱정하는 불안 요소가 생활 곳곳에 있기도 하고, 그와 관련된 생각들을 의식적으로 제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걱정거리들이 머릿속에 떠오르며,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 때문에 이들은 걱정과 이로 인해 발생한 불안을 능동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를 태도는 보이지 않고, 단지 걱정만 하는 수동적인 모습으로 생활하게 된다.
걱정을 제거 가능한 것으로 생각한다.
범불안장애를 겪는 사람들에게 걱정이란 세상에서 가장 필요 없는 감정과도 같다. 그래서 이를 없애버리면 누구보다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마치 외과적 수술을 통해 몸에 박힌 가시를 제거하는 것처럼 걱정거리들을 인생에서 도려낼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비합리적인 생각으로 오히려 불안을 키우는데 일조하는 잘못된 신념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이 놓치고 있는 것은 걱정거리 아래 숨겨져 있는 보다 근본적인 불안의 원인이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 생활 속에서 느껴지는 마음의 불편감은 자신의 심리 상태를 보다 깊이 있게 탐색해볼 수 있는 신호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이 신호를 민감하게 느끼면서도 단지 현실적인 걱정거리나 심리적인 불안함만을 없애려 할 뿐 그 속에 깊이 내재되어 있는 근원을 파악해보려 하지 않는 것이다.
오랫동안 지속된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범불안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 걱정은 매우 익숙하고, 일상생활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상당히 오랜 시간을 이것들과 함께 보내게 된다. 이럴 경우 걱정하는 것을 아주 당연시 여기게 되며, 인간의 삶이 원래 그러한 것이라 생각하게 된다. 이를 삶에서 불필요한 것이라 생각해 없애버리고 싶어 하면서도 한편에서는 떨쳐버릴 수 없는 것이라 여기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자신의 성격이나 운명으로 여기며, 오랜 기간 함께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태도는 자신이 걱정이나 불안을 다룰 능력이 없다는 생각으로 이어져 무기력에 빠지는 원인이 될 수 있다.
2. 걱정에 대한 사고방식
정상적인 걱정의 이점
생활 속에서 걱정과 이에 따른 불안을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이를 잘 다뤄 부적응적인 사고와 행동 양상이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지혜로운 삶의 태도일 것이다. 적절한 걱정과 긴장은 여러 상황을 대비하고, 알맞은 대처를 하는데 도움이 되며, 동기부여의 효과도 있다. 어떤 프로젝트를 앞둔 회사원이라면 관련 자료나 과거 사례 등을 찾아보며 준비를 할 수 있게 하고, 처음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필요한 자격 요건이나 능력을 갖추는데 매진하게 한다. 이처럼 걱정의 순기능은 일상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데 도움을 준다.
지나친 걱정의 부작용
하지만 걱정에 대한 잘못된 신념이 형성되면 앞서 설명한 장점은 약화되고, 걱정 자체를 비정상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자신이 하고 있는 걱정이 부적절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불안이 증폭되고, 할 수만 있다면 이를 인생에서 도려내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불가능하기에 걱정의 크기는 날이 갈수록 커지게 되고, 그 범주도 늘어나게 된다. 또한 자신이 느끼는 걱정의 크기만큼 남들도 똑같이 겪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를 치료의 대상으로 여기지도 않게 된다. 오히려 걱정이 없는 타인을 걱정하기도 하고, 심할 때는 되려 비난하거나 비정상 취급을 한다.
걱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처럼 걱정에 대한 신념이 왜곡될 경우 오직 걱정을 하기 위해 사는 것처럼 삶을 살게 된다. 인생 속 다양한 자극과 경험들 속에서 걱정할 요소들을 더 잘 찾는 것이다. 범불안장애를 느끼는 상황들이 확대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들이 걱정을 당연시 여기는 이유는 걱정을 함으로써 불안이 해소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의 걱정을 타인에게 털어놓았을 때 관심과 위안이라는 이득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걱정을 더욱더 내려놓지 못한다. 물론 일시적으로 불편감이 감소되긴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이 해결된 것이 아니기에 불안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잠시라도 느낀 안도감과 타인의 애정에 중독되어 더욱더 걱정거리를 찾게 된다.
걱정은 나쁜 일을 일어나게 만든다?
생활 전반에 위협을 느끼고 이를 과하게 반응하는 이유 중 또 하나는 이것이 나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잘못된 신념 때문이다. 걱정에 대한 결과를 오직 부정적으로만 예측하기 때문에 두려움이 더 커지는 것이다. 범불안장애를 겪는 사람들이 걱정을 끊어내고 싶어 하면서도 완전히 버리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비극적 결말을 막기 위해서라도 걱정을 해야 안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불행한 미래를 회피하고 싶은 마음과 그것을 예언하는 생각은 함께 일어나게 되며, 이것은 불안 속에 살게 되는 원인이 된다.
3. 걱정에 대한 걱정
최근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라는 책 제목을 본 적이 있다. 책을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제목만큼은 범불안장애를 겪는 사람들의 깊은 속내를 잘 표현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걱정과 이로 인한 불안한 마음은 앞에서도 설명한 것처럼 적절하다면 분명히 일상생활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이것이 자신뿐 아니라 가까운 타인의 삶까지도 불편하게 만든다면 깊이 있게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만약 이 과정에서 걱정에 대한 걱정이 자신의 삶을 잠식하고 있다 느껴진다면, 이를 극복할 방안을 모색해 봐야 한다. 걱정하며 사는 인생이 당연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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