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알쓸인잡', 전체 프로그램명은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인간 잡학사전'이 방영되고 있다. '알쓸신잡'과 '알쓸범잡'을 잇는 시리즈로 이번에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현재 이 글을 쓰는 시점까지 3회가 방영되었고, 2가지의 주제로 출연진들이 이야기를 나눴다. 1화와 2화에 걸쳐 방영된 첫 번째 주제는 패널들이 영화감독 혹은 시나리오 작가라는 가정하에 '자신의 영화 주인공으로 등장시키고 싶은 사람'에 대한 흥미로운 대화들이 오갔다.
그리고 2화와 3화에서는 출연자들의 기준에서 본 '사랑하게 되는 인간'을 주제로 (필자가 생각하기에) 의미 있는 이야기들이 펼쳐졌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바로 이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특히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 다시 말해 자기애에 대해 중점적으로 다뤄보려고 하는데, 출연자들의 대화를 듣다 보면 마치 심리상담을 받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이유는 상담 시에도 주요하게 다뤄지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심리상담을 받는다는 생각으로 자신에 대해 심도 있게 생각해보며 글을 읽어보길 권한다.
1. 출연진이 소개한 인물들에 대한 요약
프랑스의 문제적 작가
소설가 김영하 작가님이 사랑한 사람은 '오노레 드 발자크'라는 프랑스의 19세기 작가다. 발자크의 삶은 시련이 많았다. 애정 결핍, 양극성 장애(조울증), 낭비벽 등 심리적 문제는 물론 계속된 사업 실패로 경제적 어려움도 있었다. 하지만 귀족이 되기 위한 욕망을 서슴없이 드러내며 귀족 여인과 결혼하기를 꿈꾼다.
비록 귀족들은 그를 비웃었지만 발자크 본인은 자신의 속물스러움을 부정하지 않고, 끝까지 그것을 갖기 위해 노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절하게 몰락하게 된다.
통합된 자아의 천문학자
'알쓸인잡'을 통해 방송에 첫 출연한 천문학자 심채경 박사님이 소개한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사랑의 정의에 대해 먼저 고민했다는 그녀는 그 과정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고, 자신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살아온 본인을 10점 만점에 10점으로 평가하며 자기애를 보였다.
자신의 부족한 점, 잘못 표현한 언행, 수많은 일상의 실수들, 인정하고 싶지 않은 면 등 열등감을 느끼는 순간들 조차 인정하는 것이 자기 사랑과 행복의 시작이라 말했다.
물리학자에게도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
알쓸 시리즈의 최다 출연진인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님이 생각한 인물은 같은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이다. 다소 극단적일 정도로 물리학에 심취한 그는 철학이나 교양 등에 적대적이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김상욱 교수님이 그를 사랑하는 인물로 꼽은 이유는 그에게는 보수적인 주류를 풍자하는 유머 감각이 있었다는 점, 학생들의 입장을 먼저 배려한 교육자였다는 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겉보기에는 감성보다 이성이 앞서는 차가운 인물처럼 보이는 그에게도 한 여성에 대한 열정적인 사랑의 스토리가 숨겨져 있었다는 점을 꼽았다.
직업에서 사명감을 찾는 사람의 이야기
법의학자 이호 교수님이 사랑하는 인물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동료인 '조남수' 박사님이다. 그는 자신의 영역에만 메몰 되어 있지 않고, 자신이 택한 업의 본질에 집중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인물이다. 또한, 대중들의 시선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사회 뒤편에서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해내는 인물로 소개되었다.
단지 자신의 직업을 생계 수단만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닌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큰 틀로 확장해 바라보고, 이 사회가 더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그 나름의 노력을 다하는 모습을 이호 교수님의 입을 통해 간접적으로 접하며 사명감뿐 아니라 인류애를 느낄 수 있었다.
결점을 갖고 있는 사람들
3회에 특별 출연한 정서경 작가는 본인이 쓴 시나리오 속 등장인물들을 사랑한다고 고백했다. 특히나 최신작의 주인공들에게 더 애정을 느낀다는 그녀는 자신의 영화와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등장인물들의 결점을 주요 애정 포인트로 꼽았다.
그 이유는 등장인물이 어떤 특수한 사건을 맞닥뜨렸을 때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결점을 바탕으로 선택을 하고, 그 결과로 맞은 또 다른 상황이 전개되며 이야기와 캐릭터의 성격이 확장되기 때문이다.
2. 결점, 결핍, 열등감 그리고 매력
비록 심리학자나 정신의학과 의사는 출연하고 있지 않지만 '알쓸인잡'은 다분히 인간의 마음, 학문적으로는 심리학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각자의 자리에서 인생의 여정을 차곡차곡 밟아온 출연진들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인간과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회차의 주제가 '사랑'이었던 만큼 출연자들의 사랑과 관련된 가치관을 엿볼 수 있었는데, 특히나 자기애와 결점에 대한 그들의 관점을 여러 각도에서 이해할 수 있었다.
이들의 대화를 들으며 심리상담을 받는 듯한 느낌이 드는 이유도 바로 이 결점, 결함, 열등감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장단점을 모두 받아들이는 사랑
특히 필자의 이목을 집중시킨 것은 심채경 박사님이 말한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 즉 자기애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에 대한 가장 큰 전제 조건은 바로 스스로에 대해 잘 아는 것이다. 자신에 대한 장점이나 칭찬할만한 것들 뿐 아니라 쉽게 화내고, 타인을 미워하는 등 마주하고 싶지 않은 면 또한 파악하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심리학자 칼 융은 이를 빗대어 그림자라 표현하였으며,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이러한 면들을 억압하고 부정할 때 정신증으로 악화될 수 있다고 했다.
이렇게 자신의 피하고 싶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면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의 결함 혹은 결핍, 이에 따른 열등감은 어느 누구나 느끼고 싶어 하지 않으며, 이때 느껴지는 불쾌한 감정을 해결하기 위해 인간은 수많은 시도를 한다. 이것이 긍정적으로 해결된다면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지만, 통합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부정하기 위한 시도만 반복된다면 스스로를 마주하기란 더욱 힘들어진다. 이는 곧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으로 이어지게 된다.
결점이 있어야 더 사랑할 수 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인간은 이러한 점들을 타인에게서 발견했을 때 이를 매력으로 느끼기도 한다. 그 예로 '알쓸인잡'에서 김영하 작가님은 발자크와 해리포터를 심채경 박사님은 배구선수 김연경 님에 대해 이야기했으며, 특별 출연진이었던 정서경 작가님은 자신의 작품 속 등장인물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애정결핍, 고아, 작은 키, 가난, 허영심, 이기적인 성격 등이 바로 그런 것들인데 이것을 미디어 콘텐츠나 일상의 타인에게서 보게 됐을 때는 또 다른 관점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이는 자신의 결핍을 다른 사람에게 무의식적으로 투사한 것으로 그들의 시련이나 아픔에 공감하게 되고, 그들이 역경을 이겨내는 과정을 지켜보며 대리 만족을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지고, 매력을 느끼며,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무게 중심은 자기 안에 둘 것
이처럼 한 사람의 결핍과 이를 해소하고자 하는 욕망은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게 인식될 수 있다. 자신이 가진 단점에 대해서는 발전의 원동력이나 불행의 원인으로, 타인에게서는 매력과 사랑의 중요 요소로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을 자신 안에 세운 기준을 바탕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점이다. 심채경 박사님의 말처럼 천체 내부에 무게중심이 있어야 행성의 궤도가 정상 범위에 머무르는 것처럼 자신에 대한 가치판단의 기준도 자기 안에 존재해야 자기애를 높일 수 있다. 만약 이것이 밖에 존재한다면 자신에 대해 아는 것도, 타인에게 자신을 투사해 공감과 매력을 느끼는 것도 불가능해진다. 이 상태가 바로 남과 비교하며 열등감을 느끼는 상태인 것이다.
3. 자신을 더 관대하게 대하는 자세
누군가와의 비교를 통해 성장을 도모한 사람에게는 비교를 하지 않는 상태는 상상할 수 없다. 그만큼 시선이 자기 안이 아닌 밖에 머물러 있다는 뜻이다. 이들은 타인을 기준으로 한 완벽주의에 사로 잡혀 자신을 끊임없이 채찍질하고, 자기 내부의 목소리를 듣거나, 자신을 알아가는 것에는 관심이 없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만족감이나 행복감을 느끼기가 어렵다. 이를 다르게 해석해 보면 자신을 돌보지 않고, 자신의 결함을 받아들이지 않은 채 억압하고 부정하는 상태인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칼 융의 그림자 속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무게 중심이 비정상적이라는 것, 정작 자신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없다는 것, 자신의 욕망 뒤에 숨겨진 진짜 감정이 있다는 사실을 먼저 받아들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알쓸인잡' 출연진 중 심채경 박사님이 언급한 것처럼 자신에 대해 먼저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
그동안 엄한 부모처럼 스스로를 대했다면, 이제는 사랑으로 모든 것을 수용해주는 부모처럼 자신을 대해야 한다. 조금 실수해도 괜찮고, 미숙해도 칭찬하며, 단지 오늘 하루를 잘 살아낸 자신에게 찬사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겠지만, 이 시간들이 켜켜이 쌓일 때 가치판단의 기준이 자신 안으로 돌아오고, 자신의 장단점을 모두 수용하는 자기애가 높은 통합된 자아상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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