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복지정책

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 ‘시간’에서 ‘선택’으로 — 개인예산제가 바꾸는 돌봄의 문법

작성자 엘리아 · 2026년 08월 31일

서론: 14만 명의 일상을 떠받치는 제도, 그 다음 단계

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는 혼자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을 하기 어려운 장애인에게 활동지원사를 파견해 신체활동·가사활동·이동보조를 지원하는 제도다. 2011년 도입 이후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의 핵심 인프라로 자리 잡았고, 2026년 기준 이용자는 약 14만 명, 관련 예산은 2조 8,102억 원 규모로 성장했다. 전년 대비 2,779억 원이 늘어난 수치다.

그런데 올해 이 제도를 둘러싼 논의의 초점이 달라졌다. 지금까지의 쟁점이 “몇 시간을 더 줄 것인가”였다면, 2026년의 화두는 “그 시간을 누가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다. 정부가 2024년부터 시범 운영해 온 장애인 개인예산제가 3차 시범사업에 들어서면서, 정해진 서비스를 정해진 방식으로 받던 구조에 균열이 생기고 있기 때문이다. 양적 확대와 질적 전환이 동시에 진행 중인 지금이, 이 제도를 들여다볼 적기다.

본론 1: 단가·시간·대상 — 2026년 양적 확대의 실제

먼저 숫자로 확인할 수 있는 변화다. 활동지원 서비스 단가는 2025년 시간당 1만 6,620원에서 2026년 1만 7,270원으로 인상됐다. 약 3.9% 인상으로, 활동지원사 임금과 기관 운영비를 함께 반영한 조정이다. 이용자 수는 2025년 12월 기준 13만 3,000명에서 2026년 14만 명으로 약 7,000명 늘어난다.

주목할 대목은 최중증 장애인 가산급여다. 지원 시간이 월 205시간에서 258시간으로 확대됐다. 가산급여는 활동지원사를 구하기 어려운 최중증 장애인에게 시간당 추가 수당을 얹어주는 장치인데, 지원 시간이 53시간 늘었다는 것은 곧 “매칭이 안 돼 서비스를 못 받는” 사각지대를 겨냥한 조치다. 실제로 활동지원 제도의 고질적 문제는 급여량 부족이 아니라 급여를 사용할 인력을 찾지 못하는 미스매치였다. 중증도가 높을수록 돌봄 난이도는 올라가는데 보상은 동일하니, 시장에서 후순위로 밀리는 구조였다. 가산급여 확대는 이 왜곡을 가격 신호로 교정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대상 범위도 넓어진다. 2026년 9월부터 국가보훈대상자의 활동지원 신청 자격이 기존 상이등급 3~7급에서 전 등급으로 확대된다. 그동안 보훈 체계와 장애인 복지 체계가 분리 운영되면서 발생했던 제도 간 공백을 메우는 조정이다.

본론 2: 개인예산제 — 바우처를 ‘내 방식대로’ 쓴다는 것

2026년 5월 1일 시작된 개인예산제 3차 시범사업은 전국 17개 시·도의 33개 시·군·구, 960명을 대상으로 한다. 지난해 17개 시·군·구 528명 규모에서 지역은 약 2배, 인원은 1.8배로 늘었다.

핵심은 바우처의 용도 자율화다. 기존 방식에서 이용자는 활동지원 바우처를 활동지원사 인건비로만 쓸 수 있었다. 개인예산제에서는 급여액의 일부를 떼어 본인에게 더 필요한 물품이나 서비스를 직접 선택해 구매할 수 있다. 예컨대 이동이 잦은 이용자는 보조기기나 교통비에, 재활이 급한 이용자는 치료 서비스에 배분하는 식이다. “표준화된 서비스를 배급받는 수급자”에서 “예산을 운용하는 소비자”로 위치를 옮기는 설계다.

3차 시범사업의 또 다른 변화는 참여 자격 확대다. 기존에는 활동지원 수급자격자만 대상이었지만, 이제 활동지원·성인 발달장애인 주간활동·청소년 발달장애인 방과후활동·발달재활 중 하나 이상의 수급자격이 있으면 참여할 수 있다. 특히 발달재활 바우처가 포함된 점은 의미가 크다. 발달장애 아동 가정은 그동안 바우처로 지정된 재활 서비스만 이용할 수 있어, 실제 필요와 급여 항목이 어긋나는 경우가 잦았기 때문이다.

본론 3: 남은 쟁점 — 자율성과 안전망 사이

개인예산제를 향한 시선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우선 총량 문제다. 예산 총액이 그대로인 채 사용처만 넓어지면, 자율성 확대가 실질적 급여 삭감으로 체감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장애계에서 꾸준히 제기된다. 영국 등 개인예산제를 먼저 도입한 국가에서도 재정 긴축기에 예산 총액이 줄면서 제도의 취지가 훼손된 전례가 있다.

두 번째는 선택 역량의 격차다. 예산을 스스로 설계하려면 정보 탐색과 계약, 정산까지 감당해야 한다. 가족 지원이 두텁고 정보 접근성이 높은 이용자는 제도의 이점을 온전히 누리지만, 고립된 1인 가구나 의사소통이 어려운 중증 이용자는 오히려 불리해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이용계획 수립을 돕는 지원 인력(브로커리지) 배치가 본사업 성패의 관건으로 지적된다.

세 번째는 법적 근거와 시스템이다. 정부는 시범사업과 병행해 개인예산제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바우처 결제 시스템을 구축해 본사업 전환 기반을 다진다는 방침이다. 사용처를 넓히는 만큼 부정수급 관리와 정산 체계가 함께 정비되지 않으면 제도 신뢰가 흔들릴 수 있다.

결론: 확대와 전환을 함께 저울질할 때

2026년 장애인 활동지원 정책은 두 축으로 움직인다. 단가 인상과 가산급여 확대라는 양적 보강, 그리고 개인예산제라는 질적 전환이다. 두 축은 서로를 필요로 한다. 급여 총량이 부족한 상태에서 선택권만 넓히면 자율성은 구호에 그치고, 반대로 총량만 늘리고 사용 방식을 고정하면 개인별 욕구의 다양성을 담아낼 수 없다.

앞으로의 과제는 분명하다. 첫째, 본사업 전환 시 예산 총량이 개인예산제 도입의 명분으로 축소되지 않도록 재정 원칙을 명문화해야 한다. 둘째, 이용계획 수립을 지원하는 전문 인력을 제도 안에 배치해 선택 역량의 격차를 메워야 한다. 셋째, 활동지원사의 처우와 수급 구조를 함께 개선하지 않으면 가산급여를 늘려도 매칭 문제는 반복된다. 960명의 시범사업이 14만 명의 제도로 확장되기까지, 검증해야 할 것은 아직 많다.

참고 자료

You may also lik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