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활동지원에서 ‘선택’으로, 패러다임의 전환
2026년 한국 장애인 복지 정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얼마나 더 주는가’에서 ‘어떻게 쓰게 하는가’로 정책의 무게중심이 옮겨가고 있다는 점이다. 보건복지부는 올해 활동지원서비스 대상자를 13만 3천 명에서 14만 명으로 늘리고, 서비스 단가를 시간당 1만 6,620원에서 1만 7,270원으로 인상했다. 동시에 5월 1일부터는 전국 17개 시·도, 33개 시·군·구의 960명을 대상으로 장애인 개인예산제 3차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활동지원, 발달장애인 주간활동, 방과후활동, 발달재활 등 4종 서비스 이용권의 20% 범위 안에서 장애인 당사자가 직접 필요한 서비스나 물품을 선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단순한 급여 확대를 넘어, 장애인 당사자를 복지의 수동적 수혜자가 아니라 자기 삶을 설계하는 주체로 인정하겠다는 정책적 선언이기도 하다. 이 변화가 왜 지금 중요한지, 현장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짚어본다.
본론
확대되는 활동지원서비스: 누가, 얼마나 받게 되나
2026년 활동지원서비스는 수급자 수와 서비스 단가 양쪽에서 모두 확대됐다. 대상자는 2025년 12월 13만 3천 명에서 2026년 14만 명으로 약 5% 늘었고, 활동지원사에게 지급되는 서비스 단가는 1만 6,620원에서 1만 7,270원으로 인상됐다. 이는 활동지원사의 처우 개선과도 맞물리는 부분으로, 돌봄 인력 확보가 곧 서비스 질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야간·휴일 등 인력 공급이 쉽지 않은 시간대에 활동지원을 받기 어려웠던 중증장애인의 현실을 고려해 가산수당 체계도 함께 손질되고 있어, 시간대별 돌봄 공백을 줄이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발달장애인을 위한 통합돌봄 종사자 전문수당도 월 15만 원에서 20만 원으로 오르고, 최중증 발달장애인을 위한 긴급돌봄서비스는 2개 시·도 시범사업에서 전국 시행으로 확대됐다. 장애 인정 범위도 15개 유형에서 16개 유형으로 늘어 췌장장애가 새롭게 포함됐다. 장애인연금 역시 2025년 소비자물가변동률 2.1%를 반영해 기초급여가 월 34만 2,510원에서 34만 9,700원으로, 부가급여를 합한 최대 지급액은 월 43만 9,700원까지 늘었다. 다만 이런 양적 확대만으로 활동지원이 필요한 모든 사람에게 충분한 서비스가 돌아간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된다. 신청 후 실제 서비스 이용까지 걸리는 대기 기간, 활동지원사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농어촌 지역의 인력 수급 문제는 여전히 현장의 숙제로 남아 있다.
개인예산제란 무엇인가 — 3차 시범사업이 보여주는 변화
장애인 개인예산제는 활동지원 등 정해진 서비스 메뉴를 그대로 받는 대신, 급여의 일부를 현금성 예산처럼 활용해 장애인 당사자가 필요에 맞게 선택적으로 지출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국정과제로 추진돼 2024~2025년 두 차례 시범사업을 거쳤고, 2026년 5월 1일부터는 전국 17개 시·도, 33개 시·군·구의 960명을 대상으로 3차 시범사업이 진행 중이다. 참여자는 활동지원, 발달장애인 주간활동, 방과후활동, 발달재활 등 4종 서비스 이용권의 20% 범위 안에서 예산을 자유롭게 편성해 쓸 수 있다. 실제 이용 현황을 보면 신체적 건강 분야 지출이 34.4%로 가장 많았고, 보육·교육 23.8%, 일상생활 유지 14.4%, 주거 11.2%, 문화여가 10.2% 순으로 나타났다. 이는 정해진 서비스 항목으로는 채워지지 않던 개별적 필요, 예를 들어 보조기기 구입이나 주거환경 개선 같은 영역에 실제 수요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1·2차 시범사업과 비교하면 참여 지역과 인원이 꾸준히 늘어난 점도 눈에 띈다. 제도가 안정적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는 동시에, 아직 본사업 전환 전까지는 효과를 단정하기 이르다는 신중론도 함께 제기된다. 보건복지부는 하반기 참여 장애인과의 간담회를 통해 시범사업을 중간 점검하고, 당사자 의견을 반영해 본사업 설계를 구체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장의 기대와 남은 과제
개인예산제에 대한 장애계의 평가는 기대와 우려가 엇갈린다. 자기결정권 강화라는 방향에는 공감하지만, 예산 편성의 자유도가 전체 급여의 20%로 제한적이라는 점, 예산 관리와 정산 과정에서 행정 부담이 당사자나 가족에게 전가될 수 있다는 점, 활동지원이라는 안정적 돌봄 시간이 예산 전환으로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함께 제기된다. 본사업으로 전환되더라도 도시와 농어촌 지역의 활동지원사 수급 격차가 해소되지 않으면 ‘선택할 권리’가 명목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부 장애인단체는 예산제가 활동지원 급여 자체의 축소나 민영화로 이어지지 않도록 제도적 안전장치를 함께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통합돌봄서비스가 2026년 3월 27일부터 중증장애인과 65세 이상 고령 장애인을 대상으로 의료·요양·돌봄을 연계해 제공되기 시작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주목할 변화다. 개인예산제와 통합돌봄이 맞물리면서, 장애인 복지가 시설·서비스 중심에서 당사자의 삶 전체를 설계하는 방식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결론: 자기결정권 확대를 향한 다음 단계
2026년 장애인 복지정책의 핵심은 급여 확대와 자기결정권 강화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는 데 있다. 활동지원서비스 대상과 단가 인상, 장애인연금 인상은 기본적인 생활 안정을 뒷받침하고, 개인예산제는 그 위에서 장애인 당사자가 자신의 삶을 더 능동적으로 설계할 수 있는 틀을 만든다. 다만 제도가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지려면 예산 운용의 자유도를 점진적으로 넓히고, 지역별 활동지원 인프라 격차를 줄이는 후속 조치가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또한 시범사업 단계에서 드러난 행정 부담과 정산 절차의 복잡성을 본사업 설계 단계에서 충분히 단순화하지 않으면, 제도의 취지와 달리 정보 접근성이 높은 당사자만 혜택을 누리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3차 시범사업에서 나온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본사업 설계에 얼마나 충실히 반영되는지가, 이 제도가 단순한 행정 실험으로 끝날지 한국형 장애인 자립생활 모델로 자리 잡을지를 가를 분수령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