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왜 지금 ‘이주배경가족’인가
한국 사회에서 다문화가족 지원 정책은 2008년 다문화가족지원법 제정 이후 결혼이민자와 그 자녀를 중심으로 설계되어 왔다. 그러나 국제결혼 중심의 초기 다문화가정 모델은 이미 현실과 어긋나기 시작했다. 외국인 근로자 가정, 유학생 가정, 중도입국 자녀, 미등록 이주 아동 등 기존 ‘다문화가족’ 정의로는 포괄되지 않는 이주배경 인구가 빠르게 늘었기 때문이다. 법이 상정한 ‘한국인 배우자를 둔 결혼이민자 가정’이라는 표준 모델과, 실제로 학교와 지역사회에서 마주치는 이주배경 아동의 다양한 처지 사이의 간극은 갈수록 벌어졌다. 이에 정부는 2026년부터 시행되는 제5차 건강가정기본계획(2026~2030)을 통해 지원 대상을 ‘다문화가족’에서 ‘이주배경가족’ 전체로 확장하는 방향을 공식화했다. 혈통과 혼인 형태가 아니라 아동이 처한 실제 상황을 기준으로 삼겠다는 이 전환은, 지난 15년간 이어져 온 한국 이민·가족 복지의 틀을 근본부터 다시 짜는 작업이다. 지금 이 변화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본론
지원 대상의 재정의: 혈통에서 ‘상황’으로
제5차 건강가정기본계획은 ‘모든 가족을 포용하는 행복한 사회’를 비전으로 내걸고, 포용적 사회 기반 조성·기본생활 보장 강화·사회적 돌봄 확충·일가정 균형 강화라는 4대 영역과 12대 정책과제로 구성됐다. 핵심은 지원 대상의 재정의다. 그동안 정책의 사각지대에 있던 이주배경 아동·청소년을 다문화가족 지원 대상에 포함하는 방안이 검토되며, 1인 가구·미혼부·경계선 지능인 등 새로운 사회적 취약계층도 국가 가족정책의 틀 안으로 들어온다. 특히 그간 법적 지위 문제로 복지에서 배제돼 온 미등록 이주 아동을 명시적으로 포함한 것은 상징적 의미가 크다. 부모의 체류 자격이 없다는 이유로 예방접종·교육·정서지원에서 밀려났던 아이들을 국가가 책임의 범위 안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 사람인가’ 혹은 ‘부모가 어떤 경로로 결합했는가’가 아니라, ‘지금 한국에서 어떤 지원이 필요한 아이인가’를 기준으로 삼는 접근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간 것이다. 이는 이주민을 시혜적 통합의 대상으로 보던 관점에서, 이미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시민으로 전제하는 관점으로의 이동을 뜻한다.
생애주기별 맞춤 지원과 교육 격차 해소
두 번째 축은 지원 방식의 정교화다. 과거에는 다문화가족 전체를 하나로 묶어 한국어교육·통번역·상담 등 표준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이었다면, 2026년부터는 결혼이주 초기 단계, 자녀 양육기, 청소년·청년기 등 생애주기별 맞춤 지원으로 세분화된다. 결혼이주 초기에는 언어와 생활 적응, 양육기에는 자녀 돌봄과 부모교육, 청소년기에는 진로와 학습이라는 식으로 국면마다 필요한 서비스가 달라진다는 현실을 반영한 설계다. 결혼이민자에게는 역량강화와 전문 취업교육이, 학령기 이주배경 자녀에게는 기초학습 지원과 정서·적응 프로그램이 집중된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통한 방과후 학습·언어발달·정서상담이 강화되고, 학교와 지역사회를 연계한 지원 체계도 확충된다. 교육 격차 해소가 핵심 목표로 제시된 배경에는, 이주배경 학생의 학업 중단율과 상급학교 진학률 격차가 사회통합의 최대 과제로 부상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언어 장벽으로 초등 단계에서 학습에 뒤처진 아이가 중·고등학교를 거치며 격차가 누적되고, 결국 청년기 저학력·빈곤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조기에 끊겠다는 것이다. 조기 개입이 장기적으로는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투자라는 관점이 정책 전반에 스며 있다.
제도적 부담 완화와 취업·지역 정착 지원 강화
세 번째 축은 정착 과정의 실질적 장벽을 낮추는 조치다. 2026년부터 국민취업지원제도 2유형의 특정계층에 해당하는 결혼이민자·북한이탈주민·여성가구주 등은 직업훈련 자기부담금이 면제된다. 훈련 참여의 비용 문턱을 없애 노동시장 진입을 돕겠다는 취지로, 소득이 불안정한 이주 여성에게 특히 의미가 크다.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결혼이민자가 국적을 취득할 때 발생하는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국적취득비용을 지원하고 있으며, 광역·기초 단위에서 지역 특성에 맞춘 다문화 지원사업도 확대되고 있다. 서울시는 결혼이민자 역량강화와 다문화자녀 교육지원, 건강한 가족관계 형성을 축으로 맞춤형 사업을 추진하고, 제주도는 별도의 제5차 다문화가족 지원 기본계획 수립에 착수하는 등 중앙정부의 방향 전환에 발맞춰 지방정부의 계획도 재정비되고 있다. 이처럼 취업·국적취득·지역 정착의 각 국면에서 실질적 부담을 완화하는 조치들이 촘촘히 배치되면서, 이주배경가족이 한국 사회에 안정적으로 뿌리내릴 토대가 두터워지고 있다.
결론: 포용의 확대와 남은 과제
‘다문화’에서 ‘이주배경가족’으로의 전환은 단순한 용어 교체가 아니라, 이주민을 시혜의 대상이 아닌 사회 구성원으로 대하겠다는 관점의 이동이다. 혈통과 혼인 형태가 아닌 아동의 실제 상황을 기준으로 삼고, 생애주기별로 지원을 정교화하며, 미등록 아동까지 포용의 범위를 넓힌 제5차 건강가정기본계획은 한국 가족정책의 성숙을 보여준다. 다만 과제도 분명하다. 대상 확대가 예산과 전달체계의 확충으로 뒷받침되지 않으면 선언에 그칠 수 있고, 미등록 아동 지원은 출입국·체류 정책과의 정합성 문제를 남긴다. 확대된 대상을 실제 지원 현장까지 연결할 인력과 재원, 그리고 성평등가족부·교육부·법무부 등 부처 간 협업 체계가 관건이다. 포용의 문을 넓힌 만큼, 그 문을 통과한 이들이 실질적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이행의 밀도를 높이는 일이 앞으로의 숙제로 남는다. 다가올 5년, 계획서의 문장이 현장의 변화로 이어질지가 이 전환의 진정한 성패를 가를 것이다.
참고 자료: 대한민국 정책브리핑(korea.kr) 성평등가족부 2026년 달라지는 정책, 제5차 건강가정기본계획 확정 보도, 서울특별시 2026년 다문화가족 지원사업 현황, 전국인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