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복지정책

치매 재산관리, 국가가 맡는다: 치매안심재산관리지원서비스 시범사업 4개월의 기록

작성자 엘리아 · 2026년 10월 17일

서론: 치매 환자의 통장을 누가 지켜줄 것인가

치매는 기억만이 아니라 판단력과 재산 관리 능력까지 서서히 앗아갑니다. 보건복지부가 2026년 2월 확정한 제5차 치매관리종합계획(2026~2030)에 따르면 치매 환자는 2026년 약 97만 명에서 2030년 121만 명, 2050년에는 226만 명으로 늘어날 전망입니다. 환자가 보유한 자산, 이른바 ‘치매머니’도 2023년 기준 154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문제는 이 재산이 사기나 가족 간 갈등, 경제적 학대에 쉽게 노출된다는 점입니다. 의료와 돌봄 중심이던 치매국가책임제가 재산 보호라는 새로운 영역으로 넓어진 이유입니다. 그 핵심이 2026년 4월 22일 시범사업으로 시작된 ‘치매안심재산관리지원서비스’입니다. 고령화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우리나라에서 치매는 더 이상 특정 가정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대비해야 할 과제입니다. 특히 혼자 사는 어르신이나 가족과 연락이 끊긴 환자에게는 통장과 도장을 지켜줄 사람이 없다는 현실이 가장 큰 위험입니다. 이 글에서는 서비스의 구조와 지난 4개월의 성과, 그리고 남은 과제를 차례로 살펴봅니다.

본론 1: 서비스는 어떻게 작동하나

치매안심재산관리지원서비스는 국민연금공단이 치매 환자의 재산을 신탁 방식으로 맡아 관리하고 집행하는 공공신탁 기반 사업입니다. 대상은 치매나 경도인지장애로 재산 관리가 어렵거나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되는 기초연금 수급자, 즉 65세 이상 어르신입니다. 65세 미만 치매 환자 가운데 차상위계층이나 기초생활수급자 같은 저소득층도 포함됩니다. 기초연금을 받지 않는 65세 이상도 신청할 수 있으나, 이 경우 위탁 재산의 연 0.5% 수준의 이용료를 부담합니다.

맡길 수 있는 재산은 현금, 임대차보증금 반환채권 같은 지명채권, 주택연금 등 현금성 자산이며 한도는 최대 10억 원입니다. 신청은 본인이나 가족이 국민연금공단 지사를 찾아가거나, 요양시설과 치매안심센터가 의뢰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절차는 네 단계입니다. 먼저 지역본부가 신청서를 보고 대상 여부를 판단하고 우선 지원 대상자를 가립니다. 다음으로 담당자가 자택 등을 방문해 의료 필요도, 생활 가치관, 보유 자산을 파악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재정지원계획을 세워 계약서를 작성하고, 본부 심의와 승인을 거쳐 계약이 체결됩니다. 환자 본인에게 계약 능력이 부족하면 대리권을 가진 후견인을 선임하도록 치매안심센터와 협의합니다.

계약 이후에는 재정지원계획에 따라 월세, 요양비, 생활비가 계좌이체로 나뉘어 지급됩니다. 공단은 월별 집행 내역을 모니터링하고 반기마다 한 번 이상 이용자를 방문해 상태와 지출을 확인하며, 이상 징후가 있으면 불시 점검도 합니다. 계획에 없던 큰 수술비 같은 특별 지출이나 계약 해지 요청은 외부 전문가가 과반수인 치매안심재산관리위원회가 심의합니다. 이용자가 사망하면 남은 재산은 정산해 법정 상속인에게 지급되고, 상속인이 없으면 민법상 상속인부존재 절차에 따릅니다.

본론 2: 시범사업 4개월, 숫자가 말해주는 것

뉴시스가 7월 7일 보도한 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7월 3일 기준 누적 문의는 545명, 1,271건이었고 상담을 신청하거나 의뢰한 사람은 118명이었습니다. 그중 34명이 심층 상담을 받고 있었으며 실제 계약은 4명, 후견인 선임 절차를 밟는 사람이 14명이었습니다. 첫 계약자 4명은 모두 치매안심센터를 통해 신청했고, 2명은 무연고, 2명은 사실상 가족과 단절된 상태였습니다. 한 계약자는 현금성 자산 약 2,000만 원과 기초연금 등 월 120만 원가량의 수입을 월세와 공과금, 생활비로 나누어 쓰도록 계획을 세웠습니다. 다른 계약자는 요양시설에 머무는 분으로, 월 40만 원 수입 중 요양비를 내고 남은 돈을 저축해 훗날 수술비에 대비하게 했습니다. 임을기 복지부 노인정책관은 이를 “사회적 안전망이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관심은 빠르게 커졌습니다. SBS Biz가 9월 8일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월별 신청자는 4월 6명, 5월 34명, 6월 109명, 7월 184명으로 첫 달보다 약 30배 늘었습니다. 법정 후견인이 필요한 환자 37명은 법원의 후견인 선임이 끝나는 대로 본계약을 맺을 예정입니다. 다만 신청 증가에 비해 정식 계약이 적다는 점은 이 제도의 현실적 병목을 보여줍니다. 치매 환자는 스스로 계약을 맺기 어려워 성년후견 절차가 먼저 필요한 경우가 많고, 이 과정에서 시간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2025년 10월 본사업으로 전환된 발달장애인 재산관리지원서비스는 2026년 6월 기준 223명이 이용했고 위탁 금액은 75억 1,000만 원에 달합니다. 비슷한 제도가 정착하면 이용이 점차 늘어난다는 선례입니다.

본론 3: 2028년 본사업으로 가는 길의 쟁점

복지부는 2년간 시범사업을 점검한 뒤 2028년 본사업을 도입한다는 계획입니다. 이를 위해 국회에 계류 중인 치매관리법 일부개정안 논의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종합계획은 2026년 우선 지원 대상을 경제적 학대 위험이 있는 기초연금 수급자 750명으로 잡았고, 2030년까지 1만 명 이상으로 확대하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공공후견인도 현재 256명에서 2030년 1,900명으로 늘립니다.

몇 가지 쟁점이 남아 있습니다. 첫째는 접근성입니다. 지금은 요양원 같은 생활시설을 중심으로 대상자를 발굴하고 있어, 집에서 혼자 지내는 어르신이나 정보가 닿지 않는 가정에는 제도가 알려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복지부가 복지관과 재가센터까지 발굴 범위를 넓히겠다고 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둘째는 후견 절차입니다. 법원 선임 절차가 길어지면 제도의 사각지대가 생기므로 공공후견인 확충이 속도를 좌우합니다. 셋째는 신뢰와 감시 체계입니다. 큰 재산을 공적 기관이 맡는 만큼 집행 투명성과 이용자 의사 존중을 확보할 장치가 필요합니다. 외부 전문가 과반의 위원회 운영이 형식에 그치지 않도록 지켜봐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재산이 많지 않은 어르신이 이용료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는지도 점검해야 합니다.

결론: 재산 보호는 존엄을 지키는 일

치매안심재산관리지원서비스는 치매 정책의 무게중심이 치료와 돌봄을 넘어 ‘삶의 기반’인 재산과 존엄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시범사업 4개월 만에 신청이 30배 늘었다는 사실은 그만큼 수요가 컸다는 뜻이며, 무연고 어르신까지 계약을 맺었다는 점은 사각지대를 메우는 첫걸음으로 평가할 만합니다. 그러나 아직 계약 건수는 적고 대부분 사업이 시범 단계라서, 실제 체감도는 예산과 인력 확보, 후견 제도와의 연계에 달려 있습니다.

주변에 치매 진단을 받았거나 금전 관리에 어려움을 겪는 어르신이 계시다면 가까운 치매안심센터나 국민연금공단 지사에 문의해 보시기 바랍니다. 본인이 의사 표현이 가능할 때 미리 상담을 받아 두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치매는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질병인 만큼, 이 제도의 성패는 결국 우리 모두의 노후 안전망의 수준을 가늠하는 잣대가 될 것입니다. 재산을 지키는 일은 단순한 금전 문제가 아니라, 환자가 마지막까지 자신의 삶을 스스로 꾸려 가도록 돕는 일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2028년 본사업 도입 때까지 제도가 더 촘촘해지도록 현장의 목소리가 이어지길 기대합니다.

참고 자료

이미지 Photo by RDNE Stock project on Pexels

You may also lik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