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아빠의 돌봄은 출산 이후부터라는 전제가 깨진다
그동안 우리 제도에서 남성 근로자의 돌봄은 사실상 아이가 태어난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으로 설계돼 있었습니다. 배우자 출산휴가는 이름 그대로 ‘출산한 날’을 기점으로만 쓸 수 있었고, 임신 기간 중 산전 검진에 동행하거나 고위험 임신으로 입원한 배우자를 돌보는 일은 개인 연차로 해결해야 했습니다. 유산이나 사산을 겪은 경우에도 휴가를 보장받는 쪽은 여성 근로자뿐이었습니다.
2026년 9월 18일부터 이 전제가 바뀝니다. 개정 남녀고용평등법 시행으로 이른바 ‘배우자 지원 3종 세트’가 도입되면서, 배우자 출산휴가를 출산예정일 이전부터 쓸 수 있게 되고 배우자 유산·사산휴가가 새로 만들어지며 자녀 출생 전에도 육아휴직을 시작할 수 있게 됩니다. 남성 육아휴직 비중이 38.8%까지 올라온 흐름 위에서, 제도가 ‘임신기’라는 공백을 메우러 들어온 셈입니다.
배우자 출산휴가, 출산예정일 50일 전부터 쓸 수 있다
이번 개편의 핵심은 배우자 출산휴가의 사용 시점 확대입니다. 현행 배우자 출산휴가는 배우자가 출산한 날부터 120일 이내에 20일을 최대 4차례로 나눠 쓸 수 있는 유급휴가입니다. 9월 18일부터는 여기에 더해 출산예정일 50일 전부터 휴가를 시작할 수 있게 됩니다. 명칭도 사용 범위에 맞춰 ‘배우자 출산전후휴가’로 확장됩니다.
실질적인 변화는 임신 후기에 집중됩니다. 산전 진찰 동행, 임신성 고혈압이나 조기진통 등 합병증으로 인한 입원 간호, 출산 임박 시점의 준비 같은 상황에서 연차를 쓰거나 무급으로 자리를 비우지 않아도 됩니다. 총 20일이라는 일수 자체가 늘어나는 것은 아니므로, 임신기에 며칠을 당겨 쓸지와 출산 후 회복기에 며칠을 남겨둘지를 부부가 함께 설계해야 하는 구조입니다.
급여 측면에서는 우선지원대상기업(중소기업) 근로자에 대해 정부가 휴가 전 기간의 급여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 지원이 이어지면서 배우자 출산휴가급여 수급자는 2026년 상반기 1만 5,820명으로 전년 동기 1만 328명 대비 1.5배 늘었습니다. 제도를 쓰라고 권하는 것만으로는 움직이지 않던 수치가, 소득 보전이 붙자 곧바로 반응한 사례로 읽힙니다.
배우자 유산·사산휴가 5일 신설, 임신 중 육아휴직도 가능
두 번째는 배우자 유산·사산휴가의 신설입니다. 배우자가 유산 또는 사산한 경우 남성 근로자는 5일의 범위에서 휴가를 쓸 수 있고, 이 가운데 최초 3일은 유급으로 보장됩니다. 그동안 유산·사산휴가는 임신 당사자인 여성 근로자에게만 부여돼 왔고, 배우자는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개인 휴가에 기대야 했습니다. 신체적 회복이 필요한 배우자를 돌보고 함께 상실을 감당할 최소한의 시간이 처음으로 법에 명시된 것입니다.
세 번째는 육아휴직 개시 시점의 확대입니다. 지금까지 육아휴직은 자녀가 태어난 뒤에야 신청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유산·조산 등의 위험이 있는 임신 중인 배우자를 돌보기 위해 남성 근로자도 자녀 출생 전부터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장기 입원이나 절대안정 처방처럼 며칠의 휴가로는 감당이 안 되는 고위험 임신 상황에서, 배우자 출산휴가보다 긴 호흡의 돌봄이 가능해집니다.
세 가지 제도는 성격이 겹치지 않고 단계별로 이어집니다. 고위험 임신 국면에는 육아휴직, 출산 전후 집중 돌봄에는 배우자 출산전후휴가, 상실을 겪은 경우에는 유산·사산휴가가 각각 대응하는 구조입니다.
남성 육아휴직 38.8%, 제도가 수요를 따라가는 국면
이번 개편은 진공 상태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6년 상반기 육아휴직급여 수급자는 10만 명을 넘겨 전년 동기(9만 4,993명) 대비 9.5% 증가했고, 이 가운데 남성은 4만 320명으로 전체의 38.8%를 차지했습니다. 남성 비중은 2024년 처음 30%대에 진입한 뒤 2025년 36.5%, 2026년 상반기 38.8%로 계속 올라 40% 돌파를 앞두고 있습니다. 육아휴직·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출산전후휴가·배우자 출산휴가 4개 제도의 상반기 활용자 합계는 약 20만 명으로, 지난해 전체(34만 2천 명)의 절반을 훌쩍 넘었습니다.
민간 부문의 변화도 함께 확인됩니다. 국내 100대 기업의 남성 육아휴직 사용률 중앙값은 2024년 8.5%에서 2025년 12%로 처음 두 자릿수에 올라섰고, 남성 대상자 4명 중 1명 이상이 육아휴직을 쓰는 기업은 9곳에서 13곳으로 늘었습니다. 정부는 증가 요인으로 2024년 6+6 부모 함께 육아휴직제 도입, 2025년 육아휴직 급여 인상, 2026년 대체인력지원금·업무분담지원금 확대를 꼽고 있습니다. 휴직자의 소득 감소와 동료의 업무 부담이라는 두 가지 장벽을 동시에 낮추는 조합입니다.
하반기 제도 개선도 이어집니다. 8월 20일 시행된 단기 육아휴직은 휴원·휴교, 방학, 질병·사고 입원, 감염병에 따른 등원 중지 등으로 갑작스러운 돌봄 공백이 생겼을 때 연 1회, 1주 또는 2주 단위로 쓸 수 있고 1주만 사용해도 급여가 지급됩니다. 11월 27일부터는 연간 6일의 난임치료휴가 중 유급기간이 2일에서 4일로 늘고, 우선지원대상기업 근로자에 대한 정부 급여 지원기간도 같은 폭으로 확대됩니다.
남은 과제: 쓸 수 있는 사람과 쓸 수 없는 사람
배우자 출산휴가의 사용 시점 확대와 유산·사산휴가 신설은 ‘맞돌봄’의 출발선을 임신기로 끌어당겼다는 점에서 분명한 진전입니다. 다만 이 제도들은 모두 고용보험 가입 임금근로자를 전제로 합니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와 프리랜서, 자영업자는 여전히 적용 범위 밖에 있고, 100대 기업 남성 사용률이 이제 12% 수준이라는 사실은 중소·영세 사업장의 현실이 통계 평균보다 훨씬 팍팍하다는 점을 드러냅니다.
총 20일이라는 배우자 출산전후휴가 일수가 그대로라는 점도 짚어둘 대목입니다. 임신기 사용이 늘수록 출산 직후 회복기에 쓸 수 있는 날이 줄어드는 구조여서, 일수 확대 논의는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복귀 이후의 경력 단절과 인사상 불이익을 어떻게 막을 것인지도 과제로 남습니다. 제도의 문턱은 낮아졌지만, 그 문을 실제로 여는 사람이 어디까지 넓어지는지가 다음 단계의 성패를 가를 것입니다.
참고 자료
- ‘아빠 육아휴직’ 40% 돌파 코앞…육아휴직급여 수급자 상반기만 ‘10만 명’ 초과 (고용노동부 보도자료, 2026-07-13)
- 갑작스러운 돌봄엔 ‘단기 육아휴직’…임신·출산 배우자 지원 확대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2026-08)
- [2026 양성평등지수] 육휴·유연근무 공시 2년차…남성 육휴 ‘한 자릿수 기업’ 60→33곳 (아시아경제, 2026-09-03)
- 상반기 육아휴직급여 수급자 10만 명 돌파…남성 육아휴직 38.8% (아시아투데이, 2026-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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