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모수개혁 다음 숙제, 구조개혁이 시작됐다
2025년 3월 국회는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13%로, 소득대체율을 43%로 정하는 모수개혁을 통과시켰다. 18년 만의 개혁이었지만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기초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까지 묶어 노후소득을 어떻게 겹겹이 보장할지, 즉 연금 구조개혁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 숙제를 맡은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가 2026년 9월 29일 제8차 전체회의를 열고 보건복지부, 재정경제부, 고용노동부, 금융위원회로부터 업무보고를 받았다. 정부는 이 자리에서 기초연금 차등 지급, 국민연금 크레딧 확대, 퇴직연금 전 사업장 의무화라는 구상을 내놓았다. 어르신 대부분이 받는 기초연금과 직장인의 퇴직연금이 함께 바뀔 수 있다는 점에서 국민 생활에 미칠 파급력이 크다. 이 글에서는 이번 업무보고의 핵심 내용과 쟁점을 차례로 짚어 본다. 특히 급속한 고령화 속에서 노인 빈곤율이 여전히 높은 우리 현실을 고려하면, 공적연금과 사적연금을 아우르는 설계가 얼마나 촘촘한지가 개혁의 성패를 가를 것이다. 지금 어떤 논의가 오가는지 알아 두면 앞으로의 노후 준비에도 도움이 된다.
기초연금 차등 지급, 저소득 노인에게 더 두텁게
복지부가 제시한 기초연금 개편의 골격은 ‘목표 수급률 70% 유지, 대신 소득에 따라 지급액을 달리한다’는 것이다. 소득 수준을 3개 구간으로 나누어 저소득층에는 더 많이 주고, 상대적으로 형편이 나은 구간에는 지금처럼 지급하는 이른바 ‘하후상박’ 방식이다. 현재 부부가 모두 기초연금을 받으면 각각 20%가 감액되는데, 저소득층 기준으로는 이 감액률을 10%로 낮추기로 했다. 노인 부부 가구의 실수령액이 그만큼 늘어나는 셈이다. 또 공무원·군인·사학 등 직역연금 수급자의 배우자라도 소득이 낮으면 기초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손볼 계획이다.
구체적인 지급 수준은 재정 추계를 거쳐 확정된다.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기준중위소득 32~50% 이하에 10만 원, 50~75% 이하에 5만 원을 추가로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해 달라고 요구했고, 정은경 복지부 장관은 여러 시나리오로 재정 추계를 하며 협의하겠다고 답했다. 정부는 관련 입법을 올해 안에 마무리해 2027년 4월부터 시행한다는 목표다. 다만 기초연금은 이미 연간 지출이 수십조 원에 이르는 만큼, 추가 지급이 재정에 어느 정도 부담을 줄지가 최대 변수다. 2027년 복지부 예산안에서 기초연금이 25조 7천억 원 규모로 잡힌 점을 감안하면, 차등 인상분의 재원 마련 논의는 피할 수 없다. 한편 소득 구간을 나누는 순간 구간 경계에 놓인 노인 사이의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수 있고, 소득·재산을 정확히 파악하는 행정 체계도 함께 보완돼야 한다. 반대로 목표 수급률 70%를 유지한다는 점에서 수급 대상이 줄어드는 노인이 없다는 점은 제도 안정성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국민연금 사각지대 해소와 크레딧 확대
국민연금 분야에서 복지부는 사각지대 해소와 수익률 제고를 두 축으로 내세웠다. 먼저 2027년 1월부터 청년의 생애 첫 보험료를 지원하고, 저소득 지역가입자에 대한 보험료 지원 기준을 완화한다. 소득이 불안정해 보험료를 내기 어려운 계층이 연금 가입에서 밀려나지 않게 하려는 장치다. 크레딧 제도도 넓어진다. 군복무 크레딧은 인정 기간이 현행 12개월로 묶여 있는데, 이를 실제 복무기간 전체로 확대하는 법 개정을 추진한다. 출산 크레딧은 둘째 자녀의 인정 기간을 12개월에서 15개월로 늘린다. 저출생 대응과 연금 개혁을 연결하는 시도로 볼 수 있다. 군 복무 기간 전체를 연금 가입기간으로 인정받으면 청년층의 연금 수령액이 늘어나고, 출산으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의 노후소득에도 도움이 된다. 다만 크레딧 확대에 드는 비용을 누가 부담할지는 국고 지원 문제와 직결되므로, 재정 당국과의 합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기금 운용 측면에서는 수익성이 높은 자산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전문 운용인력에 대한 인센티브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국고 지원은 관리운영비와 출산 크레딧 등에 대해 확대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연금 재정적자를 국고로 직접 메우는 방안에는 국가 재정 상황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며 선을 그었다. 참고로 2025년 개혁 당시 정부는 자동조정장치를 2036년에 발동하면 기금 소진 시점을 2088년으로 늦출 수 있다고 추계한 바 있는데, 자동조정장치 도입은 여전히 여야와 전문가 사이에서 의견이 갈리는 쟁점이다.
퇴직연금 의무화와 3층 보장체계의 빈틈
고용노동부는 다음 달 관계부처 합동으로 ‘퇴직연금 기능 강화 방안’을 발표하겠다고 예고했다. 방향은 기금형 퇴직연금을 도입하고 전 사업장을 규모별로 단계적으로 의무화하는 것이다. 전문 수탁법인이 여러 사업장의 적립금을 모아 운용하고, 영세·중소사업장이 조기에 도입하면 재정 지원을 제공한다. 수탁법인의 이해 상충을 막기 위한 운용 규제와 외부 교차검증 장치도 마련한다. 현실이 그만큼 절박하다. 지난해 퇴직연금 적립금은 501조 4천억 원에 달하지만, 최근 10년간 사업장 도입률은 26.5%에 그쳤고 30인 미만 사업장은 23.2%에 불과하다. 적립금 규모에 비해 도입 범위가 좁다는 뜻이며, 중소기업 근로자일수록 퇴직금 일시수령 후 소진되기 쉬워 노후 보장 효과가 약하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기금형 도입은 개별 사업장이 따로 운용하던 적립금을 전문 기관이 모아 굴려 수익률과 안정성을 높이려는 취지다. 큰 회사에 다니는 사람만 퇴직연금이라는 두 번째 층을 가진 셈이다.
금융위원회가 보고한 개인연금도 같은 맥락에 있다. 지난해 말 개인연금 적립금은 420조 4천억 원이고 연금저축 가입자는 840만 3천 명으로 1년 새 76만 1천 명 늘었다. 주택연금은 2월 개선방안 시행 이후 올해 가입 건수가 전년 동기보다 31% 증가했다. 국민연금·기초연금이라는 공적 보장 위에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을 얼마나 두텁게 쌓을지가 구조개혁의 본질인 만큼, 각 부처의 대책이 서로 맞물려 설계돼야 한다. 예를 들어 기초연금을 올리면서 퇴직연금 가입을 늘려도 국민연금과의 연계가 느슨하면 급여가 중복되거나 빠지는 구간이 생길 수 있다. 은퇴 후 소득이 공적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 주택연금에서 어떻게 합쳐지는지를 하나의 그림으로 보여 주는 작업이 선행돼야 국민도 노후 설계를 할 수 있다. 정책 발표가 부처별로 흩어져 나오면 개인은 자신이 어떤 혜택을 받는지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론: 부처별 대책을 넘어 종합 설계도가 필요하다
이번 업무보고는 구조개혁의 윤곽을 보여 주었지만, 동시에 한계도 드러냈다. 여야 모두 부처별 대책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말고 구조개혁 종합안을 내놓으라고 요구했고, 재정 투입이 필요한 논의에 경제부처 장관들이 잇따라 불참한 점도 비판했다. 복지부와 재정당국의 입장이 다르다는 지적이 나온 만큼, 기초연금 차등 지급의 재원과 국민연금 국고 지원 범위에 대한 정부 내 조율이 우선 과제다. 기초연금은 올해 안 입법과 2027년 4월 시행이라는 시간표가 정해졌으니 재정 추계 결과가 투명하게 공개되고 사회적 논의를 거쳐야 하며, 국회와 정부가 같은 숫자를 놓고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 퇴직연금 의무화는 영세사업장의 부담을 덜 수 있는 재정 지원이 뒷받침될 때 실효성을 얻는다. 연금은 한 번 바꾸면 수십 년간 영향을 미치는 제도다. 속도보다 설계의 완성도가 중요하며, 국민이 노후에 어떤 소득 구조를 기대할 수 있는지 분명히 그려 주는 종합 설계도를 기대한다. 아울러 개혁 과정에서 청년과 노년, 가입자와 수급자 모두가 납득할 수 있도록 세대 간 형평성을 설명하고 설득하는 노력도 이어져야 한다.
참고 자료
- 연금특위, 구조개혁 시동…정부 “기초연금 차등 지급·퇴직연금 전 사업장 의무화” (이투데이, 2026.09.29)
- ‘구조개혁’ 남았다…자동조정장치 등 쟁점[연금개혁] (헤럴드경제, 2025.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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