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26년 6월 24일
서론: 1년에 한 번, 가난의 경계선이 다시 그려지는 날
매년 한 차례, 정부는 ‘기준 중위소득’이라는 숫자 하나로 누가 생계급여를 받고 누가 받지 못하는지를 가른다. 2026년 이 숫자는 4인 가구 기준 월 649만 4,738원으로, 전년 대비 6.51% 올라 역대 최대 인상률을 기록했다. 동시에 보건복지부는 26년간 유지되던 의료급여 부양비를 폐지하고, 60여 년을 지탱해 온 부양의무자 기준도 2030년까지 단계적으로 없애겠다는 일정을 내놓았다. 물가와 생계비 부담이 커지는 가운데, 그동안 ‘근로 능력 있는 부모나 자녀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제도 밖에 머물던 빈곤 가구를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움직임이다. 기초생활보장제도는 1999년 도입 이후 한국 복지 체계의 가장 오래된 안전망 역할을 해왔지만, 동시에 부양의무자 기준처럼 가족 관계와 실제 생계난 사이의 간극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사각지대를 만들어 온 제도이기도 하다. 인구 고령화와 1인 가구 증가로 보호가 필요한 가구는 계속 늘어나는데, 정작 까다로운 기준 때문에 도움을 받지 못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올해 개편이 그동안 쌓인 문제를 실제로 얼마나 풀어냈는지, 그 안에 담긴 변화를 자세히 짚어본다.
본론
기준 중위소득 6.51% 인상, 생계급여에 4만 명이 새로 들어온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모든 급여는 ‘기준 중위소득’에서 출발한다. 정부는 2026년 기준 중위소득을 4인 가구 기준 월 649만 4,738원으로 결정했다. 2025년 609만 7,773원에서 약 40만 원이 오른 것으로, 인상률로는 6.51%에 달해 제도 시행 이래 가장 큰 인상폭이다. 특히 수급가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1인 가구는 더 큰 폭의 혜택을 받는다. 1인 가구 기준 중위소득은 239만 2,013원에서 256만 4,238원으로 7.20% 올라, 가구 규모가 작을수록 인상률을 더 높게 적용하는 방향으로 설계됐다.
급여별 선정기준 비율 자체는 생계급여 32%, 의료급여 40%, 주거급여 48%, 교육급여 50%로 전년과 동일하게 유지됐지만, 기준선이 되는 중위소득이 크게 오른 만큼 실제 선정기준액도 함께 상향됐다. 생계급여 선정기준은 4인 가구 기준 195만 1,287원에서 207만 8,316원으로, 1인 가구 기준은 76만 5,444원에서 82만 556원으로 인상됐다. 의료급여(1인 가구 102만 5,695원), 주거급여(123만 834원), 교육급여(128만 2,119원) 역시 같은 비율로 함께 올랐다.
선정기준이 오른다는 것은 그만큼 더 많은 가구가 소득 기준을 충족하게 된다는 뜻이다. 보건복지부는 이번 기준 중위소득 인상과 제도 개선을 통해 약 4만 명이 새롭게 생계급여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그동안 소득 기준에 근접해 수급에서 탈락했던 ‘경계선 가구’들이 제도 안으로 편입되는 것이다.
60년 만의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 의료급여 부양비는 26년 만에 폐지
이번 개편에서 가장 상징적인 변화는 부양의무자 기준과 관련된 조치들이다. 부양의무자 기준은 수급 신청자의 부모나 자녀에게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재산이 있으면, 실제로 부양을 받는지와 무관하게 수급 자격을 제한하는 제도로 1960년대 도입 이래 ‘복지 사각지대’의 대표적 원인으로 지목돼 왔다. 2021년 10월 생계급여에서는 사실상 폐지됐지만, 부모나 자녀 가구의 연소득이 1억 원을 넘거나 재산이 9억 원을 넘으면 여전히 수급 대상에서 제외되는 단서가 남아 있었다. 정부는 이 기준을 2027년 재산 9억 원→12억 원, 2028년 소득 1억 원→1억 5,000만 원으로 순차 완화한 뒤 2030년에는 완전히 폐지하겠다는 로드맵을 제시했다.
의료급여에서는 더 즉각적인 변화가 있었다. 부양의무자가 실제로는 생활비를 지원하지 않더라도 ‘지원하는 것으로 간주’해 수급자 소득에 반영하던 부양비 제도가 2026년 1월 1일부로 26년 만에 폐지됐다. 도입 초기 부양의무자 소득의 50%를 부과하던 것이 점차 10%까지 낮아졌다가, 이번에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가족 관계가 단절됐거나 부양의무자가 실제로는 지원할 형편이 안 되는데도 ‘서류상 부양자가 있다’는 이유로 의료급여 대상에서 제외됐던 사례들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아울러 항정신병 장기지속형 주사제의 본인부담률을 5%에서 2%로 낮춰, 정신질환 치료의 지속성을 높이려는 조치도 함께 이뤄졌다.
청년 소득공제 확대와 재산기준 손질, 그리고 남아 있는 부정수급 관리
청년층의 자립을 돕기 위한 손질도 눈에 띈다. 근로·사업소득 추가 공제 대상이 기존 29세 이하에서 34세 이하로 확대되고, 공제금액도 월 40만 원에서 60만 원으로 늘었다. 일하는 청년이 소득 일부를 인정받지 않고 수급 자격을 유지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진 것이다. 재산 기준에서는 소형이면서 10년 이상 된 차량이나 가액 500만 원 미만의 승합·화물차에 일반재산 환산율(월 4.17%)을 적용하도록 완화했고, 자녀 2명 이상이면 다자녀 가구로 인정해 자동차 재산 기준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토지 재산을 산정할 때 적용하던 지역별 토지가격 적용률도 25년 만에 폐지돼, 공시가격을 그대로 반영하는 방식으로 단순해졌다.
형제복지원 사건, 제주 4·3 사건처럼 국가의 불법행위로 피해를 본 사람이 받은 배상금·보상금 때문에 거꾸로 수급 자격을 잃는 불합리함을 막기 위한 특례도 신설됐다. 이런 일시금은 3년간 재산 산정에서 제외된다. 주거급여 역시 임차가구의 기준임대료를 급지·가구원수별로 1만 7천~3만 9천 원 인상했고, 교육급여의 교육활동지원비도 평균 6% 올랐다.
다만 제도를 두텁게 하는 동시에 정부는 관리도 강화했다. 부정수급 환수 금액이 1천만 원 이상이면 반드시 고발하도록 기준을 높였고, 반기별 고발 실적을 제출받아 관리·감독을 강화한다. 여러 채의 주택·상가를 보유하면서 임대보증금 부채 공제를 활용해 수급자로 선정되는 사례를 막기 위해, 임대보증금 부채 공제는 주택·상가 1채에 대해서만 인정하도록 손질했다. 보장성 확대와 재정 건전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는 시도로 읽힌다.
결론: 더 두터워진 안전망, 그러나 끝나지 않은 과제
2026년 기초생활보장제도 개편은 역대 최대 기준 중위소득 인상, 26년 만의 의료급여 부양비 폐지, 부양의무자 기준의 단계적 폐지 로드맵이라는 세 가지 변화가 동시에 맞물린 해다. 약 4만 명이 새로 생계급여 대상에 편입되고, 청년·다자녀·차량 재산 기준이 현실에 맞게 손질되면서 ‘제도는 있지만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조금씩 좁혀지고 있다. 형제복지원·제주 4·3 피해자에 대한 특례 신설처럼 그동안 놓쳐 온 결을 메우는 세심한 손질도 이어졌다.
그러나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는 여전히 2030년이라는 먼 시점에 맞춰져 있고, 그 사이 재산 9억 원·소득 1억 원이라는 단서에 걸려 수급에서 배제되는 가구는 계속 존재한다. 부정수급 관리가 강화된 만큼 행정복지센터의 심사·관리 부담도 함께 커질 수밖에 없다. 매년 한 번 그려지는 가난의 경계선이 현실의 생계비 부담을 얼마나 정확히 따라가는지, 그리고 사각지대 해소 속도가 고령화·1인 가구 증가 속도를 앞지를 수 있는지가 앞으로 이 제도의 성패를 가를 것이다.
참고: 보건복지부, 대한민국 정책브리핑(korea.kr) 등의 보도자료를 바탕으로 작성